흐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 최민자 수필선
최민자 지음연암서가
( 출판일 : 2023-10-15 )
작성자 :
김○아
작성일 : 2024-04-29
페이지수 : 479
상태 : 승인
수필을 읽게 된 것은 나의 무미건조한 글에 색을 입히고 싶어서 시작되었다.
첫장부터 열며 견고한 시간의 옹벽을 정해진 연한만큼 스쳐가는 우리라는 글을 보며 역시 작가는 사용하는 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닭았다.
조금 더 쌔련된 언어를 구사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다 시 하게 된다.
정보의 바다에 빠진 지금은 무슨 정보가 더 좋더라 .. 이것이 맞다더라 보다는
글을 아름답게 사용하며 정해진 연한을 사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 같다.
가면 벗기라 생각했던 글쓰기가 가면 쓰기라는 것을 아는 것은 내가 먼저 였지 않을까? 감추어진 결핌을 드러낼 밖에 없는 자폭의 방편이 글일지라도 나는 쓴다. 나를 쓴다. 사람은 다른다. 에서 사람은 똑같다로 가는 그 길목 어느 어름에 문학의 자리, 수필의 자리가 있을 것이므로 라고 작가는 글을 시작한다.
이 대문의 글이 작가의 사상이 담겨 있고 나의 생각도 일치하기에 자신의 글속에 자신이 들어나야 하는 상황이 아주 부끄럽기 때문에 나는 글을 잘 쓰기 싫어 했었다.
부부라는 수필중에 새물학적으로 같은 종이라 함은 쌍방이 서로 성적으로 끌려 교배를 하고 번식 가능한 후손을 낳으 수 있어야 한다. 암말과 수나귀가 교배하면 노새가 출생하는 데 잡종답게 튼튼하고 지구력도 좋지만 2세를 생산하기 어렵다. 이누이트 처녀와 마오이 청년은 아프리카 홀아비와 몽골의 과수댁은 같은 종이 될수 있어도 삼십년 넘게 한 지붕 아래 산 부부는 더이상 같은 종이 아닐 수 있다. 가족 끼리 왜 이래 라는 웃픈 농담대로 연식이 오랜 부부 사이엔 진즉 거래가 끊겨 있어 번식가능한 망아지는 커녕 노새 새끼 한마리도 출산하기 어려운 사이가 되어 버린다. 한지붕 아래 소닭 보듯 제각기 스마트폰이나 들여다 보며 다른 지붕 밑 일들을 궁금해 하기 일쑤다. 젊은 한때 의기 추합하여 이인삼각으로 고개를 넘은 전우애 동지애 측은지심 때문에 의리를 지키느라 살아준다는 듯이
자식이 피붙이라면 부부는 살뭍이다. 화학적 융합과 물리적 접합은 점도와 강도가 들ㄹ 밖에 없다. 다물 빠진 껌이나 쭈걱쭈걱 씹고 있는 황혼 부부들이 해혼이나 졸혼이니 하는 말에 솔깃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석달 좋고 삼년 싸우고 삼십년 참고 사는 게 부부라지 않던가.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이래저래 끝끝내 무촌일 밖에 없는 모양이다.
나는 부부라는 관계를 이렇게 정립하는 모든 앞서간 선조들에 대해서.. 대부분 이렇게 살았더라도 몇몇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도 부부라는 관계는 의리로 살수는 없다. 추억을 야곰야곰 곱씹으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 삼년의 시간을 길게 풀어 내어 삼십년을 덥고 자는 이불을 만들어 서로 추운 겨울을 이겨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이 없다면 이혼이 답이다.
미움도 사랑인것을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나는 지금도 이혼과 육아 둘중에 고민하고 있는 딩크 족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