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살인마! 살려 줘요...!"
한밤의 정적을 깨는 한 여인의 처절한 절규. 비명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달려 나온다.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사람들은 어떻게든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으려고 애쓴다. 사방이 꽉 막힌 벽, 유일한 통로인 문은 안으로 잠겨 있고, 작은 창문 역시 쇠창살로 가로막혀 있다.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간 방 안에는, 한 여자가 정신을 잃은 채 침대 아래 쓰러져 있다. 벽에 남은 범인의 선명한 손자국, 침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발자국... 분명한 범인의 흔적들! 그러나 범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과연 범인은 사방이 꽉 막힌 방에서, 어느 출구로, 어떤 방법으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는가?
발간 당시 치밀하게 짜여진 밀실 추리의 전개로 세계 추리계에 숱한 화제를 뿌린 '가스통 르루'의 대표 추리소설. 세계 10대 추리 소설이 주는 치열한 두뇌 게임이 시작된다.
당대 최고의 프랑스 추리소설 작가였던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 1868∼1927)는 『오페라의 유령』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 작품은 나중에 영화와 연극으로 다양하게 각색되어 더욱 유명해진 작가이다.
가스통 르루는 학교를 졸업한 뒤, 법률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하면서 한가한 시간에 수필과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890년경에는 전업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1894∼1906년에 걸쳐 특파원으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으며, 1905년의 러시아 혁명을 비롯하여 자신이 직접 체험한 다양한 사건과 모험을 파리에 보고했다. 기자로서 르루는 사실적인 묘사보다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거나 감상적인 평을 많이 가미해 많은 고정 독자를 확보하였다.
1900년대초에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작품은 아마추어 탐정인 조제프 룰르타비유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노란 방의 수수께끼 Le Myst re de la chambre jaune』(1907)였다. 작가로서 그는 특유의 기사체 문장을 사용하여 마치 직접 사건 속으로 뛰어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는 듯한 치밀한 구성의 소설을 많이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1910)은 파리 오페라 극장을 배경으로 시종일관 공포, 불안, 긴장감, 신비, 마법, 의문,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이자, 순수하고 아름다운 크리스틴을 두고 흉측한 괴물과 라울 드 샤니 자작이 사랑을 다투는 흥미진진한 연애소설이다. 호기심, 긴장감, 박진감, 치밀한 구성 등 추리 소설의 진수를 보여 주는 이 작품이 지금까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그 안에 소외, 증오, 질투, 연민, 사랑, 희생, 화해 등 인생의 본질적인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은 사실은 『오페라의 유령』의 작가가 한국에 대한 글을 남겼다는 것이다. 가스통 르루는 <르 마탱>지에서 특파원으로 일한 시절이 있었다. 그가 한국에 관한 작품으로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이라는 작품을 남겼는데 이 작품을 쓰기 위해 한국의 제물포에 와서 직접 취재한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제물포 해전 후 귀국 길에 오른 러시아 수병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중심으로 쓴 르포라고 한다.
1904~1905년간 벌어진 러일전쟁의 실질적 개전을 알렸던 제물포해전의 전 과정을 꼼꼼한 고증과 생생한 묘사로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물포의 영웅들을 만나게 된 과정→제물포의 영웅들과의 만남→제물포해전에 대한 인터뷰와 재현→제물포해전 이후'로 구성되어 있는데, 러일전쟁의 무대로 제물포를 비롯한 전국토를 열강에게 내어주고도, 단 한 명의 한국인 등장인물도 나오지 않아 한국인들에게는 곤혹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러일전쟁 시기 한국을 보는 프랑스 작가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